허술한 사춘기, 허술한 세상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2강
프로젝트

우리나라가 IT산업을 좋아합니다. 또 우리는 그 산업발달의 결과를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결과물 사용하기를 아주 즐깁니다. 그런 문명의 이기를 재빨리 쓰지 않으면 미개한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야만인들을 아주 불편하게 만들고, 아예 편이성의 리스트에서 제외합니다. 새 기기가 나오면 모두 줄지어 재빨리 교체하고 부지런히 그 속도에 발맞추려 합니다. 노인들도 뒤떨어질세라 젊은이들의 친절을 기대하며(구걸하며) 배워 쓰려 합니다. 아이들은 누구보다 순발력 있게 앞서 갑니다. 

 

이전에는 어른들의 세계의 규범과 습속을 아이들이 익혀가는 ‘사회화’ 과정을 밟아가야 했었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먼저 세상의 움직임을 어른보다 앞서 알아갑니다. 그리고 어른이 뒤따라 배워갑니다. 마치 이민 사회에서 그곳 말을 빨리 먼저 배운 아이들이 더디 말을 익히는 어른들에게 그곳 정보를 알려주는 지도자 어른 역할을 거꾸로 하게 되는 상황과 비슷해진 겁니다. 우리나라 안에서 이민자가 된 것 같은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삶이란 간단하게 이런 새 정보만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훨씬 복잡한 영역들의 다양한 요인들로 얼키고 설켜 움직이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속도가 재빨라서 머리가 비상하다는 몇몇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아갈 위험스러운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다양한 세대의 삶의 숨결이 모두 서로를 귀하게 여기면서, 조화롭게 협력하며, 모두가 특징껏 기여하여 천천히 좋은 세상이 되는 모습을 깨뜨리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아이들도 스스로 비상하다고 여기고 친구들이나 어른들의 다른 생각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를 ‘자폐’라 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정보만 익히는 교육을 하면서, 정보를 재생하는 성취만을 조장하면서, 사회성의 발달은 아무 데서도 건드리지 않은 채 아이들이 어느덧 사춘기에 이릅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깡그리 놓치고 몸으로 사춘기를 맞습니다. 사람 사이에 서로 어떤 특별한 의미를 지닌 존재인지 온전히 모르고 몸으로 어른이 됩니다. 그것도 옛날보다 영양상태가 좋아 사춘기는 빨리 맞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다릅니다. 어느 한 사람도 같은 사람이 없는데 그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습니다. 각자 자기가 가진 정보와 자기 욕구만을 인식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른 사람의 다름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다른 생각과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틀리다”고 느끼고, “나쁘다” 여기고, “없어져야 한다”고까지 여기게 됩니다. 공존할 수 없으니 같이 살 수 없게 됩니다.

 

끔찍한 성추행이나 성폭행은 그래서 생기는 결과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자기가 가진 성의 욕구만이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상대방이 느낄 아픔이나 수모는 고려할 줄도 모르게 된 겁니다. 사랑이란 건강한 관계에서만 가능한 것인데, 사랑과 연관 없는 성은 상대를 자기만족을 위한 도구로 삼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를 도구로만 대하는 사람에게, 자기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에게 어떻게 사랑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그런 침해는 몸서리칠 노릇이 아닙니까? 그런데 초등학생이 벌써 친구에게 그런 잔인한 폭행을 합니다. 애인이나 부부 사이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관계의 맛과 의미를 체험하지 못한 아이들이 인터넷에서 너무나 쉽게 주어지는 자극적인 동영상에 일찍부터 노출됩니다. 차근차근 자라고, 바뀌면서, 성숙해가는 감성과 이해 위에서, 서로 아끼고 성실한 관계를 맺으면서, 사랑하며 성을 알아가야 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건 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커리어를 택하고, 또 사랑하며, 시민으로 책임을 다하며 평생을 살아가는 온갖 영역에 다 해당되는 중대한 일입니다. 삶의 현장에 뛰어들어 취업하고 결혼하고 어른으로 책임있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게 되기 전에 사춘기에 이 모든 것을 갖추는 때입니다. 이런 건강한 사춘기가 사라진 사회는 끔찍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 살 곳이 아니라는 말이 나올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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