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같이 하는 관계 만들기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1강
프로젝트

지난 학기 내내 태어난 첫해의 삶을 생각하고 나누었습니다. 다음 시기에 들어서려 하면서 ‘기초신뢰감’을 가지게 된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의 다름이 왜 생기는지 생각합니다. 아이는 최소한의 필요는 적어도 충족하도록 보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는 최대한 욕구불만을 참을 수 있게 자라야 합니다. 이렇게 보살핌을 주고받는 관계에서 서로 알아주고 고마워하는 마음이 있는 관계가 성립됩니다.

멀리 있어 만날 수 없는 아들네 가족과 스카이프도 하지만 시간대를 맞추기 힘드니 e-mail을 주고받습니다. 며느리가 최근 보내준 간단한 메일이 재미있어 나누려 합니다. 아침마다 고마운 것을 세 가지씩 말하기로 했답니다. 그날 아침 식탁에서 한 살 반인 손녀가 한 말이랍니다. 첫째, ‘신발’; 둘째도 ‘신발’; 그리고 셋째는 ‘사람들’ (people)이라 했다는 군요. 걷기 시작한 지 반 년인 아이가 자기 마음껏 다닐 수 있게 한 신발이 얼마나 고마웠을까요? 걸음마도 떼기 전 돌 때 만나 내가 사준 분홍신은 벌써 잊었겠지요. 알트루사 모람들이 보낸 한복에 곁들인 꽃신 (코고무신)은 신기해서 신어봤을 테지요. 지난 주말 엄마의 사촌 결혼식에 가면서 자기가 고른 강아지 무늬 있는 신발이 아마 제일 머리에 남아있을 거예요.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웃음을 나누고, 말을 하고 들으면서 서로 관계하는 것이 얼마나 흥미롭고 재미있을까? (아이 답변에 대한 주석입니다.)

이미 삶의 첫 단계에서 아이는 주변 환경과 주고받으며 살아갈 방침을 익힙니다. 엄마가 일방으로 해주고 받으라고만 한다고 생각해봅시다. (우리네 엄마들이 잘 하는 방식이지요.) 지난 주일 교회에서 은유 엄마가 한 주일 지난 이야기 하면서 한가위 명절 휴일에 은유와 지내면서 아이가 말을 하면 말이 통해서 쉬울 줄 알았는데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엄마의 기대는 아이가 엄마 말귀를 알아듣고 잘 따라줄 것을 기대한 겁니다. 그러나 은유는 엄마의 기대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습니다. 장래 알트루사 회장감이니까요. (농담입니다. ㅎㅎ) 모든 아이들은 자기 욕구를 최소한 들어줄 어른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떼쓰는 아이가 됩니다. 소리 지르고 앙탈을 부리지 않으면 들어주지 않는 어른들과 교섭하는 방식으로 서로에게 대하는 ‘협박’이고 ‘강제’를 익힙니다.

아이와 어른의 관계가 일방통행이 아니면, 협박과 강제가 아니라 서로 듣고 표현하는, 서로 주고받는 ‘상호관계’가 싹트는 겁니다. 아이는 활발하게 기쁨과 즐거움을 찾으면서 자라고 엄마와의 관계뿐 아니라 동무들과 이웃들과 합의하고 타협하면서 같이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익히게 됩니다. 자기 욕심껏 뭐든 해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재미를 알아가는 겁니다. 일곱 달 된 동연이가 바뀌어가는 걸 봅시다. 처음에는 자기 앞에 보여지는 것만을 보며 좋으면 슬쩍 점잖게 웃었지요. 이제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찾아 두리번거립니다. 그리고 얼굴을 돌리고 몸을 돌려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제 기기까지 하니 같이 놀고 싶은 언니에게 스스로 다가갑니다. 언니는 귀찮다지만 언니에게도 같이 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만 그럴까요? 소리를 분별하는 것도 몸과 협조합니다. 팔을 뻗어 소리나는 물건을 잡으려 하고 흔들어 소리를 냅니다. 기억하는 것과 차질이 있으면 의문을 가지고 풀어갑니다. 백내장 수술하고 색안경을 쓰고 동연이 앞에 나타났습니다. 달라진 안경에 어리둥절했겠지요. 다음 날에는 웃어주었습니다. 알아봤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몸의 발달과 표현할 말이 자유로워지면서 아이는 스스로 서려 하고, 원하는 곳을 가려 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하는 ‘독자성’이 크는 유아기 (toddler)를 맞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려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다른 마음과 만나, 자기를 조절하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관계는 죽는 날까지 늘 해야할 과제입니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고, 같이 살아야 하는 사람은 자기와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하나도 없으니 우리 모두 익혀야 할 덕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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